1926년 10월 1일, 서울 종로의 단성사. 무성영화 '아리랑'이 처음 스크린에 걸렸습니다. 각본과 감독, 주연을 겸한 사람은 스물네 살의 나운규였습니다. 이날의 상영이 조선 영화계의 흐름을 바꿔놓게 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이 필름이 훗날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1907년 6월 말, 네덜란드 헤이그의 한 회의장 문 앞. 스무 살 청년이 프랑스어로 적은 원고를 손에 쥐고 서 있었습니다. 문 안에서는 만국평화회의 의장단이 대한제국 대표단의 회의 참석을 거부한 직후였습니다. 청년의 이름은 이위종. 아마 그 순간 그는, 조선의 목소리를 세계에
1947년 7월19일 낮 12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 뙤약볕 아래 거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로터리를 돌고 있었습니다. 뒷좌석에는 몽양 여운형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회의 일정을 향해 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