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5월 1일, 서울 시내에 한 장의 선전문이 뿌려졌습니다. 조선소년운동협회의 이름으로 나온 이 인쇄물은 아이를 어른의 소유물처럼 다루던 관행을 멈추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일을 기획한 사람은 20대 중반의 청년, 소파 방정환이었습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31년 7월 23일, 방정환은 서른한 살(한국 나이로는 서른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짧은 생애 안에 그는 '어린이'라는 말의 의미를 바꾸고, 잡지를 만들고, 전국을 돌며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어린이에게 매달렸는지, 사료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어린이'라는 말은 어떻게 세상에 자리 잡았나

'어린이'라는 표현 자체는 방정환 이전에도 쓰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이 말을 '늙은이', '젊은이'처럼 사람을 존중하는 호칭으로 자리 잡게 만든 사람이 방정환이라는 데는 이견이 크지 않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아이들은 '아이놈', '자식새끼' 같은 낮잡는 말로 불리는 일이 흔했습니다. 유교적 가족 질서 안에서 아이는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어른에게 딸린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방정환은 이런 언어 관행부터 바꾸려 했습니다. 그는 어른에게 존댓말을 쓰듯 어린이에게도 높임말을 쓰자고 주장했습니다.
손병희의 사위, 천도교 소년운동에 뛰어들다
방정환은 1899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상업으로 한때 넉넉했으나 가세가 기울면서 어린 시절부터 궁핍을 겪었다고 전해집니다.
1917년, 그는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의 딸 손용화와 혼인하며 천도교 계열 인사들과 깊이 얽히게 됩니다. 손병희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 무렵 방정환도 독립운동에 연루돼 짧게 고초를 겪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후 그는 천도교 청년 조직을 중심으로 소년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듭니다.
도쿄 유학생들의 모임, 색동회

1920년, 방정환은 일본 도쿄로 건너가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923년 3월, 도쿄에 있던 조선인 유학생들과 함께 아동문화 운동 단체 '색동회'를 결성합니다.
색동회 창립에는 방정환 외에도 강영호, 손진태, 고한승, 정순철, 조준기, 진장섭, 정병기 등이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동화, 동요, 아동극 같은 어린이 문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윤극영이 이 무렵 만든 동요 '반달'이 훗날 대표적인 색동회 성과로 꼽힙니다.
잡지 『어린이』와 『사랑의 선물』
방정환은 1922년, 세계 각국의 동화를 우리말로 옮긴 번역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펴냈습니다. 개벽사에서 나온 이 책은 당시 조선 아이들에게 낯설고도 새로운 이야기 세계를 열어주었습니다.
이듬해인 1923년 3월, 그는 개벽사를 통해 잡지 『어린이』를 창간합니다. 이 잡지는 동화, 동요, 과학 이야기 등을 실어 전국의 아이들에게 배포되었습니다. 방정환은 잡지 편집만이 아니라 직접 전국을 순회하며 아이들 앞에서 동화를 들려주는 구연동화가로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1923년 5월 1일, 첫 어린이날 선포

어린이날의 출발점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1922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가 창립 1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첫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어린이날의 초기 형태로 꼽힙니다.
이듬해인 1923년 5월 1일, 색동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모인 조선소년운동협회가 이를 전국 단위 행사로 확대해 '어린이날' 선포와 함께 선전문을 배포했습니다. 이 선전문에는 아이를 학대하지 말고, 밤늦도록 노동을 시키지 말며, 어른과 똑같이 존중해 대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에 만연했던 아동노동과 조혼 관행을 생각하면, 이 요구는 상당히 급진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서른셋, 너무 이른 마지막
방정환은 잡지 편집, 전국 순회강연, 색동회 활동을 동시에 이어가며 몸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오랜 과로와 신장 질환으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전해집니다.
1931년 7월 23일, 방정환은 서울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만 나이로는 서른한 살, 한국식 나이로는 서른셋이었습니다. 어린이 운동에 뛰어든 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일제의 탄압과 광복 후의 부활
방정환 사후에도 어린이날 행사는 이어졌지만, 1937년을 전후해 일제는 이 행사가 민족의식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강제로 중단시켰습니다.
광복 이후인 1946년, 어린이날은 5월 5일로 날짜를 옮겨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1957년에는 어린이헌장이 제정되었고, 1975년에는 법정공휴일로 지정되며 오늘날의 어린이날로 자리 잡았습니다.
방정환이 남긴 어린이 운동의 핵심은 하나였습니다. 아이를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독립된 인격체로 보라는 것.
핵심 연표로 정리하기
- 1899년 — 방정환 출생
- 1917년 — 손병희의 딸 손용화와 결혼
- 1920년 — 일본 도쿄 유학, 아동문학·아동심리학 수학
- 1922년 — 번역동화집 『사랑의 선물』 출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 첫 기념행사
- 1923년 3월 — 색동회 결성, 잡지 『어린이』 창간
- 1923년 5월 1일 — 조선소년운동협회, 전국 단위 '어린이날' 선포 및 선전문 배포
- 1931년 7월 23일 — 방정환 별세
- 1937년 — 일제, 어린이날 행사 강제 중단
- 1946년 — 광복 후 5월 5일로 날짜 변경
- 1957년 — 어린이헌장 제정
- 1975년 — 어린이날 법정공휴일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