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0월 1일, 서울 종로의 단성사. 무성영화 '아리랑'이 처음 스크린에 걸렸습니다. 각본과 감독, 주연을 겸한 사람은 스물네 살의 나운규였습니다. 이날의 상영이 조선 영화계의 흐름을 바꿔놓게 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이 필름이 훗날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리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
나운규, 함경도 소년에서 조선 영화의 얼굴로

나운규는 1902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 독립운동과 관련된 활동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것으로 전해지는데, 정확한 시기와 경위는 자료마다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이후 그는 연극과 영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부산의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서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아리랑'을 만들기 전에도 그는 몇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까지 맡은 작품으로 조선 영화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게 됩니다. 그 작품이 바로 '아리랑'이었습니다.
영화 '아리랑'은 어떤 이야기를 담았나
영화의 주인공 영진은 정신적 충격을 겪은 뒤 실성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마을에서 친일 앞잡이로 그려지는 인물이 영진의 여동생을 괴롭히자, 영진은 그를 살해하고 결국 일본 경찰에게 끌려갑니다. 마지막 장면, 마을 사람들이 아리랑을 부르는 가운데 그가 끌려가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힙니다.
검열이 엄격했던 시기였기에 영화는 노골적으로 저항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실성한 인물의 눈을 빌려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관객들은 그 은유 속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읽어냈다고 평가됩니다.
감독은 나운규였을까, 다른 이름이었을까
'아리랑'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 중 하나는 감독 표기 문제입니다. 당시 공식 기록에는 일본인 츠모리 슈이치가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조선인이 제작 전면에 나서기 어려웠던 식민지 영화 산업의 구조 때문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각본과 연출의 실질적인 주도권은 나운규에게 있었다는 것이 오늘날 영화사 연구자들 사이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이 때문에 '아리랑'은 형식상의 감독과 실질적 작가가 다른, 식민지 시기 조선 영화의 독특한 제작 환경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자주 언급됩니다.
개봉 당시 조선 사회를 흔든 반응

'아리랑'은 개봉 이후 조선 전역에서 큰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기록됩니다. 당시 신문들이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잇달아 보도했다고 전해지며, 흥행 면에서도 이전 조선 영화들과는 비교되지 않는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다만 정확한 관객 수나 상영 기간에 대한 수치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필름은 왜 사라졌을까 —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오늘날까지 '아리랑'의 원본 필름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이어진 한국전쟁을 거치며 많은 조선 시기 영화 필름들이 소실되었고, '아리랑' 역시 그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십 년에 걸쳐 일본이나 중국 어딘가에 필름이 남아있다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떠돌았지만, 지금까지 실물로 확인된 사례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리랑'은 줄거리와 평론, 당시 기록으로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실체 없는 걸작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운규와 아리랑이 한국영화사에 남긴 자리
나운규는 '아리랑' 이후에도 여러 작품을 연출하고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1937년, 지병이던 결핵으로 서른다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 영화의 원형을 만든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아리랑'은 이후 여러 차례 리메이크와 재해석의 대상이 되었지만, 원본이 없는 만큼 그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상상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필름은 사라졌어도 그 제목과 이야기의 뼈대만은 1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셈입니다.
필름은 남지 않았지만, '아리랑'이라는 이름과 그 안에 담긴 정서는 지금도 한국영화사의 출발점으로 이야기됩니다.
실물이 없는 걸작이라는 역설은 오히려 이 영화를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 조건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필름 한 조각이라도 발견된다면, 그것은 한국 영화사 전체가 다시 쓰여야 할 사건이 될 것입니다.
- 1902년 나운규 출생 (함경북도 회령)
- 1926년 10월 1일 영화 '아리랑' 단성사 개봉
- 제작 조선키네마프로덕션, 공식 감독 명의는 츠모리 슈이치로 전해짐
- 1937년 나운규 사망 (35세, 결핵)
- 현재까지 '아리랑' 원본 필름 미발견, 대표적인 '유실 영화'로 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