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년 음력 7월, 황산벌 들판에 백제군 5천 명이 모였습니다. 맞서 오는 신라군은 5만, 열 배에 가까운 병력이었습니다. 이끄는 사람은 백제의 장군 계백이었습니다. 삼국사기는 계백이 출전에 앞서 자신의 처자를 스스로 베었다고 전합니다. 살아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었습니다.
나당연합군, 백제를 향해 움직이다

이 싸움은 갑자기 벌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660년, 신라와 당은 백제를 함께 공격하기로 손을 잡았습니다. 당의 대군은 바다를 건너 백제 서쪽 해안으로 상륙했고,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 5만은 육로로 백제 왕도인 사비성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나당연합군의 최종 목표는 사비성 함락이었습니다.
계백의 결사대, 마지막 관문에 서다
신라군이 사비성으로 가는 길목에는 황산벌이 있었습니다. 백제는 이곳을 지키지 못하면 도성이 그대로 뚫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계백은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로 향했습니다. 병력 차이는 열 배에 달했지만, 물러설 곳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네 번을 싸워, 네 번을 이기다

전투가 시작되자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백제의 결사대는 좁은 지형을 이용해 신라군의 진격을 네 차례나 막아냈습니다. 5만 대군이 5천 명에게 거듭 밀리는 형국이었습니다. 신라 진영에서는 사기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화랑의 죽음, 전세를 뒤집다
거듭된 패배 앞에서 신라는 어린 화랑들을 홀로 적진에 보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반굴과 관창 등 화랑들이 백제 진영에 뛰어들었다가 잇따라 목숨을 잃었습니다. 어린 화랑들의 잇따른 희생을 지켜본 신라군은 사기가 크게 치솟았습니다. 이후 신라는 총공세로 전환했습니다.
사비성 함락과 의자왕의 항복

5천 결사대는 결국 5만 대군을 끝까지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계백은 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황산벌의 방어선은 무너졌습니다. 길이 열리자 나당연합군은 곧바로 백제의 도성 사비성으로 진격했습니다. 의자왕은 항복했고, 이후 당으로 압송되었습니다.
- 660년 7월 황산벌 전투 — 계백의 결사대, 4차례 승리 뒤 패배
- 660년 사비성 함락 — 의자왕 항복, 당으로 압송
- 660년 이후 백제 부흥운동 — 복신·도침·흑치상지 주도
- 663년 백강 전투 — 백제 부흥군과 왜의 지원군, 나당연합군에 패배
- 668년 고구려 멸망 — 백제보다 8년 뒤
백제 부흥운동에서 백강 전투까지
백제가 무너진 뒤에도 저항은 곧바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복신과 도침, 흑치상지 등이 각지에서 병사를 모아 백제 부흥운동을 이어갔습니다. 왜(倭)는 백제 부흥군을 돕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 663년 백강에서 나당연합군과 맞붙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백제 부흥군과 왜의 지원군이 패배하면서 백제의 재건 시도는 사실상 끝을 맺었습니다.
황산벌 전투, 한능검에서는 이렇게 나옵니다
한능검은 황산벌 전투를 단순한 전투 묘사보다 백제 멸망의 흐름 속에서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당연합의 형성, 계백의 결사대, 화랑의 희생, 사비성 함락, 백제 부흥운동과 백강 전투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알아두어야 합니다. 특히 백제는 660년에 멸망했고, 고구려는 그보다 8년 뒤인 668년에 멸망했습니다. 두 사건의 순서를 바꿔 묻는 문제가 자주 나오는 만큼, 연도를 정확히 기억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5천의 결사대가 5만을 네 번 막아낸 싸움, 그 끝에서 660년 백제의 700년 역사가 닫혔습니다.
확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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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이끈 백제 결사대의 병력은 몇 명이었습니까?
- 1만 명
- 5천 명
- 3만 명
- 5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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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5천 명
계백은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로 향했습니다.
2.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군의 사기를 되살린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 당군의 지원 도착
- 김유신의 작전 변경
- 계백의 투항 제안
- 어린 화랑들의 희생
정답 보기
정답: 어린 화랑들의 희생
어린 화랑들의 잇따른 희생을 지켜본 신라군은 사기가 크게 치솟았습니다.
3.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연도 관계로 옳은 것은?
- 백제는 660년, 고구려는 그보다 8년 뒤인 668년에 멸망했다
- 고구려가 백제보다 8년 먼저 멸망했다
- 백제와 고구려는 같은 해에 멸망했다
- 백제 멸망 이후 고구려는 부흥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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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백제는 660년, 고구려는 그보다 8년 뒤인 668년에 멸망했다
백제는 660년에 멸망했고, 고구려는 그보다 8년 뒤인 668년에 멸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