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한능검에 이렇게 나옵니다 — 배경부터 정리

사이재

2026년 08월 04일

국서 한 장이 바다를 건너기까지

ButHoi.png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 CC BY-SA 3.0 / ja:User:Yonoe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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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무왕 대무예는 재위 구년째인 727년 8월, 일본으로 향하는 사신단에 국서를 들려 보냅니다. 일본 역사서 속일본기에 따르면 이 사신단은 표류 끝에 일본 땅에 닿았고, 국서가 조정에 전해진 것은 이듬해였습니다. 728년 정월, 쇼무 천황이 그 문서를 받아 듭니다.

국서를 보낸 해와 일본이 그것을 받아 읽은 해가 다른 셈입니다. 이 시차를 헷갈리면 한능검 문제에서 함정에 걸리기 쉽습니다.

대조영,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우다

고구려는 668년 당과 신라 연합군에 무너집니다. 그로부터 서른 해가 지난 698년,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웁니다. 처음 이름은 진(震), 혹은 진국(振國)이라 기록됩니다.

'발해'라는 이름, 당의 책봉에서 시작되다

건국 초기 이름은 진국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부르는 '발해'라는 국호는 당과의 관계 속에서 자리 잡습니다. 713년, 당은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합니다. 이때부터 나라 이름이 발해로 굳어집니다. 책봉은 당이 이 나라를 주변국으로 인정했다는 뜻이지만, 발해는 이후에도 독자적인 연호를 쓰며 스스로를 황제국에 준하는 나라로 자부합니다.

스스로는 고구려를 이었다고 썼다

발해가 자신을 어떤 나라로 여겼는지는 국서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일본의 역사서 속일본기에 실린 발해 국서에는 고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이어받았다는 문구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고려는 고구려를 가리킵니다. 발해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밝힌 셈입니다.

고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이어받았다 — 속일본기에 실린 발해 국서(727년 발송, 728년 전달) 중

일본도 '고려'라 불렀다

History of Korea-Inter-country Age-830 C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 CC BY-SA 3.0 / KJS615
History of Korea-Inter-country Age-830 C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 CC BY-SA 3.0 / KJS615

발해를 고구려의 후예로 본 것은 발해만이 아니었습니다. 772년, 일본 조정이 남긴 문서에는 고려국왕에게 문안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727년 국서 이후로도 두 나라는 여러 차례 사신과 문서를 주고받았고, 772년 문서는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점은 다르지만, 발해를 가리켜 고려라 부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 698년 — 대조영, 동모산에서 발해 건국
  • 713년 — 당,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
  • 727년 — 무왕, 일본에 국서 발송(728년 정월 전달)
  • 9세기 — 발해 전성기, '해동성국'이라 불림(기록은 뒷날 신당서에 실림)
  • 926년 — 거란(요)에 의해 발해 멸망

해동성국, 그리고 926년의 멸망

발해는 9세기에 전성기를 맞습니다. 이 무렵의 발해를 두고 해동성국, 곧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 불렀는데, 이 표현은 뒷날 북송에서 편찬된 역사서 신당서에 실려 전합니다. 영토는 옛 고구려 땅을 넘어 만주와 연해주 일대까지 뻗었습니다. 그러나 926년, 발해는 거란(요)의 공격을 받아 무너집니다.

발해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남북국시대

발해를 한국사에 포함할 것인가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습니다. 통일신라와 발해가 함께 존재했던 시기를 남북국시대라 부르자는 주장은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의 저서 발해고에서 비롯됩니다. 지금의 한능검 교과 과정에서도 발해는 통일신라와 나란히, 한반도 남과 북에 있던 두 나라로 다뤄집니다. 이 관점은 발해를 고구려 계승국으로 보는 근거와 함께 시험에 자주 얽혀 나옵니다.

한능검에서 발해는 이렇게 나온다

시험에서 발해는 거의 매번 고구려 계승이라는 키워드로 묻습니다. 한능검에서는 일본에 보낸 국서, 고구려식 무덤 양식과 온돌을 고구려 계승의 근거로 묻습니다. 정혜공주 묘의 모줄임천장 구조가 고구려 고분과 닮았다는 점, 온돌 유적이 고구려 문화와 이어진다는 점도 함께 알아두면 좋습니다. 건국 연도 698년과 국호가 정해진 713년, 멸망 연도 926년은 연표 문제에서 그대로 출제되는 편입니다.

확인 문제

아래 문제의 답은 모두 이 글 본문에 있습니다.

1.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곳은 어디입니까?

  1. 국내성
  2. 동모산
  3. 상경성
  4. 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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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동모산
그로부터 서른 해가 지난 698년,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웁니다.

2. 당이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한 해는 언제입니까?

  1. 698년
  2. 705년
  3. 713년
  4. 726년
정답 보기

정답: 713년
713년, 당은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합니다.

3. 한능검에서 발해의 고구려 계승 근거로 자주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1. 일본에 보낸 국서
  2. 온돌
  3. 고구려식 무덤 양식
  4. 팔관회
정답 보기

정답: 팔관회
한능검에서는 일본에 보낸 국서, 고구려식 무덤 양식과 온돌을 고구려 계승의 근거로 묻습니다.

이 글의 1분 요약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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