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벨이 울린 날
7월 10일 SK하이닉스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으로 나스닥에 입성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CEO가 뉴욕 타임스스퀘어 나스닥 마켓사이트에서 직접 오프닝 벨을 울렸다. 곽 CEO는 기념사에서 신뢰와 혁신, 성장을 언급하며 "AI가 있는 모든 곳에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첫날 거래는 기대 이상이었다. ADR은 공모가 대비 13% 오른 168.01달러로 마감했고, 장중 한때 177달러까지 치솟았다. 최태원 회장은 CNBC 인터뷰에서 심경을 짧게 남겼다.
꿈 같은 일이다. 이제 꿈이 현실이 됐다
나스닥 상장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회사는 이를 계기로 미국 자본시장에서 글로벌 투자자 기반을 넓히고, 빅테크 고객사와의 AI 파트너십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상장 전에는 미국·유럽·아시아 기관투자자 대상 로드쇼도 진행했다.
역대 최대 실적, 그러나 꺾인 주가
19일 뒤인 7월 29일, SK하이닉스는 2분기 매출 79조3187억원, 영업이익 60조5426억원의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영업이익률은 76%에 달했고, 상반기 누적 매출은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57%, 영업이익은 557% 늘어난 수치였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영업이익이 컨센서스인 63조원대를 밑돌았고, 컨퍼런스콜에서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같은 추가 주주환원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발표 당일 SK하이닉스 주가는 장중 161만9000원까지 올랐다가 124만6000원까지 밀렸고, 시가총액은 한 달 전 장중 2000조원을 돌파했던 것과 대비되게 한때 1000조원 아래로 내려갔다.
외신들은 창신메모리(CXMT), 양쯔메모리(YMTC) 등 중국 반도체 기업의 생산능력 확대 우려가 엔비디아·AMD·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주 하락을 부추겼고, 이것이 국내 기업 주가 급락으로 번졌다고 분석했다. 사상 최대 실적에도 시장의 높아진 눈높이를 채우지 못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같은 날 SK하이닉스는 핵심 고객을 포함한 10여곳과 장기공급계약(LTA)을 체결하고 HBM4 양산 출하를 시작했다고 밝혔지만, 주가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기술과 투자로 답하다
실적 발표 이후 SK하이닉스의 행보는 두 갈래로 이어졌다. 하나는 기술이었다. 8월 4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 인근 샌타클래라에서 열린 FMS 2026에서 SK하이닉스는 HBM을 넘어서는 차세대 메모리 구상을 공개했다. GPU 위에 D램을 직접 쌓는 3D 적층 D램과, 낸드플래시를 쌓아 대역폭을 높인 HBF(고대역폭 플래시)가 그것이다. 김천성 솔루션개발 부문장은 에이전틱 AI 시대에 토큰 처리량이 늘어나는 속도를 D램 대역폭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른 하나는 생산 능력이었다. 8월 7일 이사회에서 SK하이닉스는 경기 용인 Y2 팹에 35조2246억원, 충북 청주 M17 팹에 19조1000억원, 합계 54조3246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의결했다. 공시 기준 자기자본의 약 4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용인 Y2는 2029년, 청주 M17은 2028년 첫 클린룸 가동을 목표로 하며, 두 곳 모두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투자가 집행된다. 회사는 투자 목적을 "메모리 수요 대응을 위한 중장기 생산 기반 확보"라고 밝혔는데, 이는 최근의 호황을 단기 현상이 아닌 구조적 수요 증가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같은 날 SK하이닉스는 보통주 1주당 375원의 분기 현금배당도 공시했다. 배당금 총액은 2733억원 규모이며, 여기에 더해 추가 주주환원 방안을 3분기 중, 늦어도 9월까지 확정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연내 발표하겠다던 기존 계획보다 앞당겨진 일정이다. 7월 말 주가 급락 이후 시장이 요구했던 신호에 뒤늦게 응답한 셈이다.
이달 초 SK하이닉스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도 협력을 맺었다. 경주 양성자가속기와 연구용원자로 '하나로'를 공동 활용해 반도체의 우주·대기 방사선 내성을 검증하는 연구다. 2018년부터 이어온 협력의 연장선으로, 자동차·위성용 반도체 신뢰성 확보를 겨냥한다.
다음에 확인할 것
- 9월(또는 그 이전) 발표될 추가 주주환원 방안의 구체적 규모와 방식, 그리고 발표 이후 주가 반응
- 용인 Y2·청주 M17 투자가 실제 착공 일정(각각 내년 7월, 2027년 2월)대로 진행되는지
- 3D 적층 D램·HBF가 시제품·양산 로드맵으로 구체화되는 시점
- 3분기 실적에서 컨센서스 충족 여부와, 중국 메모리 기업 증설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