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 한능검에 이렇게 나옵니다 — 배경부터 정리

사이재

2026년 08월 12일

몽골의 말발굽 앞, 초조대장경이 불타다

Korea-Haeinsa-Tripitaka Koreana-01.jpg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 CC BY 2.0 / Lauren Heckler (the Flickr ID is malpuella) at Flicker
Korea-Haeinsa-Tripitaka Koreana-01.jpg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 CC BY 2.0 / Lauren Heckler (the Flickr ID is malpuella) at Flicker

1231년, 몽골이 고려를 침입합니다. 이듬해인 1232년 고려 조정은 개경을 떠나 강화도로 도읍을 옮깁니다. 대구 부인사에 보관되어 있던 초조대장경판은 몽골의 2차 침입 중 불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초조대장경은 이보다 앞서, 11세기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새기기 시작한 경전입니다. 현종 때 조판이 시작되어 선종 때인 1087년경 완성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거란을 막아낸 경전이었지만, 정작 몽골의 침입 앞에서는 경판 자체가 전란 속에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왜 다시 새겼나 — 재조대장경의 시작

Korea-Haeinsa-Tripitaka Koreana-03.jpg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 CC BY-SA 2.0 / Joone Hur
Korea-Haeinsa-Tripitaka Koreana-03.jpg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 CC BY-SA 2.0 / Joone Hur

경전이 사라졌다고 신앙과 염원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고려 조정은 강화도에서 다시 대장경을 새기기로 결정합니다. 이번에는 몽골의 침략을 물리치겠다는 염원이 담겼습니다.

이 사업을 주도한 것은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무신정권의 최우(최이)였습니다. 대장경 조판을 전담할 관청인 대장도감이 설치되고, 강화도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판각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16년의 기록 — 팔만대장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Korea-Haeinsa Tripitaka Koreana woodbloc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 CC BY-SA 3.0 / Steve46814
Korea-Haeinsa Tripitaka Koreana woodbloc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 CC BY-SA 3.0 / Steve46814

팔만대장경은 1236년부터 1251년까지, 16년에 걸쳐 강화도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경판의 수는 자료에 따라 8만 1천258장, 혹은 8만 1천352장 등으로 다르게 집계되지만, 흔히 팔만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방대한 규모입니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 새겼는데도 글씨체가 고르고 오탈자가 적어, 당시 판각 작업의 정밀함을 짐작하게 합니다.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그리고 오늘까지

완성된 경판은 강화도에 보관되어 있다가, 조선 초인 1398년 무렵 합천 해인사로 옮겨졌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600년 넘게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장경판전은 별도의 인위적 장치 없이 자연 통풍과 습도 조절만으로 목판을 보존해온 건축물로 평가받습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 경판으로 인쇄가 가능하다는 점은, 당시 보존 기술의 수준을 보여줍니다.

  • 1011년경 거란 침입 속 초조대장경 조판 시작(현종)
  • 1087년경 초조대장경 완성(선종)
  • 1231년 몽골의 1차 침입
  • 1232년 고려 조정 강화도 천도, 부인사 초조대장경판 소실
  • 1236년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조판 시작, 대장도감 설치
  • 1251년 팔만대장경 완성
  • 1398년경 합천 해인사로 경판 이관
  • 1995년 해인사 장경판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 2007년 대장경판(팔만대장경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 무엇이 다른가

팔만대장경과 관련해 한능검에서 자주 헷갈리는 부분이 바로 유네스코 등재 구분입니다. 대장경판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이를 보관한 해인사 장경판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각각 등재되었습니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 대장경판은 2007년에 각각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습니다. 건축물과 기록물이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유산이 나란히 등재된,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경판은 세계기록유산, 그것을 품은 건물은 세계문화유산 — 등재 대상을 바꿔 외우면 틀리기 쉬운 지점입니다.

확인 문제

아래 문제의 답은 모두 이 글 본문에 있습니다.

1. 초조대장경판이 소실된 계기로 옳은 것은?

  1. ①거란의 1차 침입
  2. ②몽골의 2차 침입
  3. ③홍건적의 침입
  4. ④왜구의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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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②몽골의 2차 침입
대구 부인사에 보관되어 있던 초조대장경판은 몽골의 2차 침입 중 불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2. 팔만대장경이 완성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1. ①6년
  2. ②11년
  3. ③14년
  4. ④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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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④16년
팔만대장경은 1236년부터 1251년까지, 16년에 걸쳐 강화도에서 완성되었습니다.

3. 대장경판과 해인사 장경판전의 유네스코 등재 구분으로 옳은 것은?

  1. ①대장경판은 세계기록유산, 장경판전은 세계문화유산
  2. ②대장경판은 세계문화유산, 장경판전은 세계기록유산
  3. ③둘 다 세계기록유산
  4. ④둘 다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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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①대장경판은 세계기록유산, 장경판전은 세계문화유산
대장경판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이를 보관한 해인사 장경판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각각 등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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