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년,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세운 비석

AD 414년, 고구려 국내성 인근에 거대한 비석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높이 6미터가 넘는 이 돌기둥에는 1,775자의 글자가 새겨졌습니다. 이 비석을 세운 사람은 광개토대왕 자신이 아니라, 아들인 장수왕이었습니다.
비석의 이름에 '광개토대왕'이 들어가 있다 보니, 세운 사람도 광개토대왕 본인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은 이 비석이 세워지기 전인 41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업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왕권을 다지려 한 사람은 왕위를 이은 장수왕이었습니다.
비석은 무엇을 기록하고 있나
비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고구려의 건국 신화와 왕계를 적은 부분,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을 연도별로 기록한 부분, 그리고 왕릉을 관리할 사람들을 정한 부분입니다. 이 가운데 학계의 관심이 가장 집중된 곳은 정복 전쟁 기록 중에서도 391년, 이른바 신묘년 기사입니다.
이 비석은 지금 중국 지린성 지안(집안)에 서 있습니다.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국내성 자리이며, 광개토대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태왕릉과도 가까운 위치입니다.
1880년대, 다시 세상에 알려지다

비석이 다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80년대 무렵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만주 벌판에 방치되어 있던 비석이 재발견되면서 탁본이 만들어졌고, 이 탁본은 이후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비문 전체가 아니라, 신묘년(391년)을 언급한 단 32자였습니다.
신묘년 32자, 왜 해석이 갈렸나
일본은 이 구절을 왜가 바다를 건너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이 해석은 근대 이후 일본이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되면서 큰 파장을 낳았습니다.
이에 맞서 국학자 정인보는 다른 독법을 내놓았습니다. 학자 정인보는 바다를 건넌 주체를 고구려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한자 32자를 놓고 문장의 주어를 누구로 볼 것인가에 따라 정반대의 결론이 나온 셈입니다.
백 년 넘게 이어진 이유

이렇게 해석이 갈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비석 자체의 상태에 있습니다. 비석이 오랜 세월 풍화되면서 140자가 넘는 글자가 마모되어 읽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한문 원문에는 띄어쓰기도 문장부호도 없어, 어디서 끊어 읽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1972년에는 재일 사학자 이진희가 비문 일부가 인위적으로 훼손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논쟁에 새로운 국면을 더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조작설은 이후 정밀 조사와 원석 탁본 연구를 거치며 현재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설로 자리 잡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논쟁 자체가, 비석 하나를 둘러싼 해석이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 391년 신묘년 — 비문 논쟁의 발단이 된 해
- 414년 — 장수왕, 광개토대왕릉비 건립
- 1880년대 — 비석 재발견, 탁본 제작
- 1972년 — 이진희, 비문 조작설 제기
- 현재 — 중국 지린성 지안(집안)에 비석 보존
한능검에서는 이렇게 나옵니다
시험에서 가장 자주 출제되는 포인트는 신묘년 논쟁의 승패가 아니라, 비석을 세운 사람이 누구인가입니다. 비석 이름 때문에 광개토대왕 본인이 세운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정답은 아들 장수왕입니다. 건립 연도 414년과 함께 묶어서 기억해 두면 헷갈리지 않습니다.
비석의 현재 위치가 중국 지린성 지안이라는 점, 그리고 신묘년 기사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의 해석이 갈린다는 점도 함께 정리해 두면 좋습니다. 다만 어느 해석이 옳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왜 해석이 갈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이 주제를 제대로 아는 방법입니다.
비석 이름에 '광개토대왕'이 들어 있다고 해서, 세운 사람까지 광개토대왕이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정리하며
광개토대왕릉비는 한 왕조가 남긴 가장 큰 규모의 비문이자, 근현대 한일 역사 해석이 정면으로 부딪힌 자리이기도 합니다. 시험을 준비한다면 건립자와 연도, 현재 위치를 먼저 확실히 잡고, 신묘년 논쟁은 두 해석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확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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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 ①광개토대왕
- ②장수왕
- ③정인보
- ④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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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②장수왕
이 비석을 세운 사람은 광개토대왕 자신이 아니라, 아들인 장수왕이었습니다.
2. 광개토대왕릉비는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 ①평양
- ②서울
- ③중국 지린성 지안(집안)
- ④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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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③중국 지린성 지안(집안)
이 비석은 지금 중국 지린성 지안(집안)에 서 있습니다.
3. 신묘년 구절에서 바다를 건넌 주체를 고구려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는 누구입니까?
- ①장수왕
- ②사카와 가게노부
- ③이진희
- ④정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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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④정인보
학자 정인보는 바다를 건넌 주체를 고구려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